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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 Andrews의 우울증사진展
- Black Dogs -
Gallery ON
2007. 4. 4(수) ▶ 2007. 5. 6(일)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Gallery ON | 02_733_8295
Black Dogs展 소개
사진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을까. 유명 연예인들의 우울증과 이로 인한 자살이 사회 문제화된 가운데 영국 사진작가의 우울증을 소재로 한 사진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온에서 오는 4월 4일부터 열려 주목된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던 경험을 맑은 고딕으로 찍은 우울증에 관한 사진은 예술계 뿐 아니라, 사회 각계의 관심을 끌 뿐 아니라 한국의 우울증 환자에게도 제시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 갤러리측은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순회전시를 할 예정이다. 수잔 앤드류(Susan Andrews)의 ‘검은 개들’(Black dogs)전시회는 우울증을 작가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사진 작업으로 인물들의 뒷모습을 포착한 것이 특징이다. '검은 개들‘(Black dogs)이라는 이 전시제목은 만성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영국의 수상 처칠이 "나는 평생 동안 검은 개 한 마리와 함께 살아왔다." 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우을증을 black dog이라고 부른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Susan의 작업은 정체성과 인식 그리고 기억의 문제에 접근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사회적 이슈를 사진으로 끌어올리면서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이번 Black dogs 작업은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고 지나가기 쉽지만, 우리 사회에 이미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 우울증을 조명한 작업으로 예술계 뿐 아니라, 사회. 인문학계, 심리학계, 정신건강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작가 자신이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무가치함과 인생의 실패자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무서움, 두려움, 공포, 혐오감에 사로잡혔고 잠 잘 때조차 자유롭지 못해 사는 것이 지옥처럼 여겼었다.
Susan의 작업노트를 보면 이 당시 우울증을 겪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나는 주저(우유부단)하고 무력하고 불안한 모든 구역질나는 감정을 극복했다. 음식에 구역질이 나고 내 주변에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났다. 심지어 잠을 자는 것에서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공포감과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날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몽도 보다도 더 끔찍했고 지옥이 있다면 이것과 같았으리라...(중략)...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실패감은 내가 보잘 것 없다는 생각과 걱정을 낳았고, 쇠약한 의욕 결핍을 결부시켰다. 나는 하염없이 늪에 빠져들었으며 관념을 포함한 모든 것이 찐득찐득하고 불분명했다. 또 그것은 일관된 문맥을 말하는 방법을 어렵게 하고 심지어 말하는 방법까지도 조금씩 손상시켰다.” 자살충동까지 느끼는 심한 우울 증세를 겪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Susan Andrews가 시작한 프로젝트인 우울증(Depression)에 관한 작업은 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겪은 사람들의 뒷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업은 우울증으로 인해 변화된 인식을 조사하는 과정으로 "당신이 우울증을 겪는 동안 자신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즉 텍스트와 사진이 함께 주어진다. 이 텍스트들은 이미지와 관련되거나 혹은 대립하면서 작용하기 시작한다.
Black dogs는 ‘나르시스가 자신의 환영에 속고 있는 것’이라는 'The drama of Being a child'의 Allice Miller 말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그의 내면세계, 고통과 역사가 아닌 오직 그의 완벽하고 훌륭한 얼굴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의 뒷모습에는 그로부터 숨겨진 그림자가 남아있는 것이다." 이렇게 숨겨진 뒷모습과 그림자는 서로에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의 사랑받는 환영으로부터 절단되어있다. Susan은 본인이 직접 우울증을 겪으면서 우울증이 단순히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가지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지나칠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Black dogs에서 우울증을 뒷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이 작업에서 표현된 이미지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지만, 그 속에 내면의 많은 것이 숨기고 있는 뒷모습에 대해 보여준다. 찐득하고 축축한 색감과 부합된 인물의 뒷모습은 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관람자에게 자신과 타인,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다시 돌아보도록 야기한다. Black dogs는 누군가에게 보여 지는 앞이 전부라고 생각하여 멋진 모습으로 치장하려 애쓰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뒤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도록. 그리고 그 뒤에도 관심 가져주기를 권하고 있는 듯하다.
Susan Andrews 소개
Susan Andrews는 영국 서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1958년에 출생하여, 18세 되던 해 런던으로 이사하여 런던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이 후에 ‘Sir John Cass School of Art’ 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하였고 1992년 The Royal College of Art에서 MA과정을 마칠 때까지 테크니션과 암실조교로 지내면서 사진에서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완벽하게 숙지하는데 전념하였다. 현재 수잔은 영국에서 손꼽히는 컬러 사진작가 겸 유능한 전시 기획자로, Sir John Cass School of Art 의사진과 전임교수 재직 중이며, St. Martins, Kingston University, London College of Printing 외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초기 그녀의 작업은 특수기법을 이용한 “still life" 에 열중하여 이 방면에 두각을 나타내어 이미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정체성과 기억, 인식의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작가 노트
나는 주저(우유부단)하고 무력하고 불안한 모든 구역질나는 감정을 극복했다. 음식에 구역질이 나고 내 주변에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났다. 심지어 잠을 자는 것에서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공포감과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날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몽도 보다도 더 끔찍했고 지옥이 있다면 이것과 같았으리라. 나는 온전한 혐오감과 거부감을 가졌다. 내 생각엔 난 내 자신을 버리고 내 자신이 싫어하는, 비루한 무엇으로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도 멋진 빌딩도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다. 음악도, 예술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마치 문이 ‘꽝’ 하고 내 얼굴을 치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문 뒤에는 무엇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니었고 오직 내 자신을 질책했다. 아주 간단한 일, 예를 들어 쇼핑을 하는 일 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몇 년 동안 마켓 주변을 맴돌았을 뿐 아무것도 살 수 없었고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나는 혼자 있는 내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보고 있는 사람들은 목적이 있어 보였고 삶으로 꽉 차있어 보였고 나만 혼자이고 고립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을 우화에나 나오는 어리석은 미숙아에 비유했다. 마치 늦은 신랑을 기다리는 동안 램프에 넣을 기름을 가져오지 못한 사람, 혹은 재능을 묻어 주인에게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어리석은 자라고. 이것은 마치 스위치가 켜지고 내 모든 삶을 붕괴시키는 것과 같았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실패감은 내가 보잘 것 없다는 생각과 걱정을 낳았고, 쇠약한 의욕 결핍을 결부시켰다. 나는 하염없이 늪에 빠져들었으며 관념을 포함한 모든 것이 찐득찐득하고 불분명했다. 또 그것은 일관된 문맥을 말하는 방법을 어렵게 하고 심지어 말하는 방법까지도 조금씩 손상시켰다. 마치 미지에 장소에서 무작위로 표면적으로만 찾아온 듯 한 그 시간은 깊은 슬픔을 동반했다. 그것은 내가 몇날 며칠을 눈물 속을 걷게 했고 나를 온전히 씻어 내린 뒤 떠날 것 같았다. 가끔 음악을 듣는 것 조차 위험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슬픔과 설명할 수 없는 노스텔지아에 방아쇠를 당길 것 같았다. - 말할 수 없는 무엇으로. 어쩌면 노스텔지아는 내가 가진 유일한 단단한 바닥인지도 모른다. - 불투명한 미래와 맞서있는 과거는 하찮은 존재라는 불안한 기운으로 정진해 갔다. 나는 수년을 CD를 갖고 있지 않았고 플레이어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만약 내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도 음악에는 문외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나를 끌어 소리 지르며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그렇다. 그것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도 자포자기 (자살기도?)를 했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런던에서 찍었던 내 사진을 모조리 찢어버렸다. 왜냐하면 주제넘게 참견하고 합의하지 않은 사진을 찍히는 것을 싫어할뿐더러 비디오카메라는 더욱이 그러하다. 가끔은 난 아이들의 졸업식이나 세리모니에 내 사진을 담기도 했지만 사실 내 잔재를 보는 것이 두려워 밖으로 나가버렸다. 난 집에 있는 거울을 모두 없애는 걸로 알려져 있고 그 결과 몇 년 동안 화장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내 자신을 보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괜찮을 때와 우울할 때의 균형은 깨지기 쉬운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많은 눈물을 자아낸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난 내 인생을 최대한 끌어 올리려 했고, 그로인해 내 반성을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 이것이 내가 약에 의지하지 않고 나를 극복한 방법이다. 내가 기분이 괜찮은 상태일 때는 내 인생을 굉장히 즐기고 있다. 영감 받는 것을 즐기고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우울함이 이 흐름을 방해하더라도 나의 지성이 이를 무한한 사실을 지켜봐 줄 거라고 내 자신을 받아들였다. 무엇에 의해 정신이 일시적으로 죽는 것에 의한 이 악의 우울함에서 난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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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070404-Susan Andrews의 우울증사진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