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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展
석철주_생활일기(신몽유도원도)_캔버스에먹,아크릴_130X388cm_2007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2007. 3. 3(토) ▶ 2007. 4. 29(수) 오프닝 : 2006. 3. 2(금) 오후 16시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15 | 02_2124_8936
오수환_변화_259X194cm_oil on canvas_2005
《호흡》은 동양사상을 맑은 고딕으로 하되 호흡조절을 필요로 하는 획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다. 출품 작가는 윤명로, 석철주, 이강소, 오수환 등 네 명으로 뚜렷한 자기세계를 가졌으면서도 이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모색해오고 있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서양의 캔버스, 유채, 아크릴과 같은 물질적인 재료를 사용하지만 동양적인 사고와 표현방법으로 지극히 정신적인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자연의 숨결, 대지의 숨결을 화두話頭로 삼은 윤명로의 <숨결 Anima> 연작, 마음 가운데 자리하는 산수山水를 표현한 석철주의 <생활일기(신몽유도원도新夢遊挑源圖)> 연작, 자연의 기운氣韻을 담은 이강소의 <섬으로부터 From an island> 연작, 고요 속의 생기生氣를 보여주고자 하는 오수환의 <변화 Variation> 연작은 포괄적으로 보면 자연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사상에서 비롯된다. 동양에서 자연은 문명과 대비되는 개념이거나 자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최고의 질서를 의미한다. 여기서 인간은 물론이고 그 어느 것도 중심일 수 없으며, 다만 모든 것이 생성하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가운데 조화, 통일되어 있는 체계이다. 모든 것이 관계를 떠나서는 상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연은 인간 중심적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겸허한 자세를 요구한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각성을 맑은 고딕으로, 길거나 짧은 일회적 운필運筆이 화면과 호흡하면서 작품은 작가 너머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사유와 명상의 장場으로 펼쳐진다.
윤명로_AnimaMVII-207_Acrylic,ironpowderoncotton_2007
윤명로(1936~)는 작업을 함에 있어서 언제나 우리 고유의 색채와 느낌을 만들어내는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는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각성에서 비롯된 겸재의 산수와 그 정신을 예찬하는 <겸재예찬謙齋禮讚> 연작을 시작으로 전통과 역사 그리고 자연에 대한 충분한 대화와 숙고를 통해서 작업을 이끌어내고 있다. <조망眺望>과 <숨결> 연작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몇 년 전 전시 준비를 위해 방문했던 스페인의 해변을 걷다가 무심코 주운 조약돌을 보면서 그 돌의 형체를 만들어낸 자연의 숨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자연의 숨결은 돌뿐만 아니라 산이나 강물과 같은 형상 그리고 우리 삶에 이르기까지 안정된 질서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면서 작품에 도입된다. 그는 아크릴 물감과 함께 입자가 매우 고운 철가루에 물과 접착제를 섞어 붓이나 나이프로 캔버스에 바른다. 스케치도 없이 마음 따라 한 호흡에 그려지는 그림이기에 무엇보다 작가의 숨결, 호흡이 중요하다. 숨결과 화면이 잘 맞아 떨어질 때 비로소 그림은 완결되는 것이다. 한편, 작가가 사용하는 쇳가루는 물과 섞이면서 녹이 스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림이 숨을 쉬고 있는 듯 한 여운을 준다. 여기에 아무 것도 칠해지지 않아 리넨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은 그림을 바라보는 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오랜 시간 묵상과 사유를 거쳐 한 호흡에 이루어진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비우고 자연의 호흡을 느껴보는 명상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강소_From island-06079_oil on canvas_181[1].8X227.3cm_2006
석철주(1950~)는 그간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차용한 <생활일기(신몽유도원도)> 연작은 마음속의 산을 표현하되 한국화의 스밈과 번짐 효과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사의寫意 산수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은 그가 예전에 누비고 다녔던 설악산, 지리산과 같은 산들의 마음속 잔상으로, 그는 작업 중 묘사보다는 자연과 하나 되는 마음에 그 의미를 둔다. 작가의 말처럼, 그의 산수는 눈에 보이는 산수가 아니라 누구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산봉우리와 골짜기, 기암괴석과 산천초목인 ‘흉중구학胸中舊學’인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캔버스에 밑칠을 6~7회 정도 한 다음 원하는 기본색을 칠한다. 청색 산수를 원하면 청색을 2회 칠한 뒤 그것이 마른 다음 흰색을 칠한다. 그런 뒤 마르기 전에 마음 속 산수를 맹물로 그린다. 즉 칠을 물로 지워나감으로써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 위를 넓고 평평한 붓으로 상하 또는 좌우로 지나가면 꿈꾸는 듯 몽롱한 분위기의 산수가 된다. 여기서 마르기 전에 맹물로 형태를 그리는 과정과 평필로 지나가는 과정 모두 무엇보다 호흡이 중요하다.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붓의 힘이나 속도에 따라 그림의 성패가 갈리고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밑의 색이 스며 나오고 물감과 물이 만나 번지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미묘한 차이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풍경은 한 편의 서정적 시를 마주하는 것처럼 함축적인 울림을 전한다.
윤명로, 석철주의 작품이 긴 호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면 이강소, 오수환의 작품은 단숨에 그은 획들로 자연의 기운, 생기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는 마치 서예의 필획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어떤 정신성을 구현하고 있는데, 이는 두 작가의 개인적 배경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강소는 조부와 아버지가 한학자이면서 서예와 문인화에 조예가 깊었고 삼촌 또한 문인화를 즐겨 그렸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오수환은 서예가였던 부친으로부터 글씨를 배우고 익혔으며 서양화 수업 이후 수년간 먹과 한지를 실험적으로 다루는 수련기간을 보냈다고 한다. 비록 이들이 다루는 재료는 유채나 아크릴이지만 비어있는 화면과 서체적인 획들로 캔버스는 동양적 느낌이 가득하다.
이강소(1943~)는 자연에서 출발하여 눈에 보이는 복잡한 세상 너머,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확실한 기氣의 세계를 그리고자 노력해왔다. 동양적 체계에서 자연은 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생성관계로 구성된 최고의 질서, 즉 ‘생기生氣의 장場’이다. 그는 언제나 우월한 인간의 입장으로 인간 외에 동물, 식물, 무생물 등이 공존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 그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관계에 주목한다. 따라서 작품을 통해 어떤 개체의 입장이 아니라 각 개체들의 상호작용, 즉 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우선 화면 전체에 넓은 붓으로 물감을 칠하고 마르기 전에 단숨에 선을 긋거나 비벼대 빠르고 거친 흔적을 남긴다. 여기에 오리, 집, 빈 배 등을 조그맣게 그려 넣으면 이내 강, 산, 구름, 사람 등이 등장하면서 이것들은 하나의 심상 풍경을 만들어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공존하는 화면은 참으로 동양적인 사유의 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그는 꾸준히 도자와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도자작업은 붓으로 단숨에 획을 긋는 것처럼, 점토덩어리를 휙 던져 만들어지는데, 그것은 중력이나 던지는 힘 등과 작용하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를 갖게 된다. 사진 작업은 그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만나는 세상을 담은 것으로 작가는 그 자신, 카메라, 세상, 인화된 세상 그리고 인화된 세상을 바라보는 관객 사이의 작용을 보여주고자 한다.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을 통해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우리를 깊은 성찰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오수환(1946~)은 작업을 통해 자연물, 인간, 사물 사이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우주의 에너지, 생기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평소 노자와 장자 같은 동양사상을 깊이 공부해 온 작가에게 이러한 주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우리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생주이멸生住移滅의 순환과정에 있는 생기의 장은 <변화> 연작에서 흰 맑은 고딕 위에 빠른 호흡으로 휙휙 그려진 선 또는 단순한 형태들로 나타난다. 그런데, 일견 즉흥적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이것들은 사실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 정교하게 계획된 것들이다. 작가는 보았던 것, 경험했던 것, 스쳐갔던 모든 것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수 십장의 스케치와 드로잉을 통해 걸러낸다. 눈에 보이는 세계, 온갖 시끄러운 모양과 소리에서 벗어나 인간의 인식을 초월해 있는 그런 세계를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야 그것들을 화면 앞에서 순간적인 호흡으로 머뭇거림 없이 펼쳐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보는 이에게 이를 강요하는 법이 없다. 그저 눈과 마음 가는 대로 느껴주길 바랄 뿐이다. 선들이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때로는 웅크린 듯 머문 화면에서 작가의 표현처럼, ‘마음의 숨질’이 느껴진다. 단 숨의 붓질로 이루어졌는데, 작품은 긴 호흡,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이렇게 네 명의 원로 및 중견 작가들은 작업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실천,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서도 계속되는 변화에 대한 욕구 또는 자연스러운 사고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성숙한 작품을 통해, 신진작가와 중국작가들의 전시가 넘쳐나는 작금의 미술계에서 여전히 건재 하는 우리나라 원로 및 중견 작가의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이 땅에 태어나 우리가 뿌리를 두고 있는 동양정신을 맑은 고딕으로 하는 작품을 보면서 빠르고 복잡한 이 세상, 사색과 명상을 통해 한 호흡 쉬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과 작가, 작가와 화면, 화면과 우리, 우리와 작가 그리고 우리와 세상이 함께 호흡하는, 모든 것들이 관계하는, 상생하는 세상, 이것이 그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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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070303-호흡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