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순 사진展

 

- 꿈의 궁전 -

 

 

 

갤러리 쌈지 제1전시실

 

2006. 7. 19(수) ▶ 2006. 8. 7(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38번지 | 02-736-0088

 

 

 

 

바늘구멍 속의 모텔

 

박영택 | 미술평론, 경기대교수

박홍순은 핀홀카메라로 모텔의 전경을 찍었다. 더러 에펠탑, 스핑크스, 자유의 여신상, 풍차 등도 보인다. 레스토랑이나 웨딩 홀의 유럽풍 외관이나 유원지의 조악한 짝퉁 조형물들이다. 서울의 답십리, 청담동, 천호동과 송도, 양평, 퇴촌, 양수리, 천안, 충주, 청원 그리고 군산 등에서 발견하고 찍은 대상들이다. 사실 그 같은 형상은 대한민국 전역에서 흔하게 보는 장면들이다. 사진만 봐서는(특히 핀홀카메라로 인한 흐릿한 이미지)외국 여행 시 찍어온 사진이나 엽서처럼 보인다. 가짜와 날림, 조악한 짝퉁 이미지가 핀홀에 의해 선명함을 지우고 몽롱하게 우려지고 있는데 그로인해 자신의 그 우스꽝스러운 날림의 외관을 ‘캄푸라치’하고 있다.

작가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엄밀히 말해 핀홀과 디지털카메라를 접목한 것이다. 일종의 ‘디지로그’라고나 할까? 바늘구멍사진기는 가장 원시적인 옛 사진기다. 세상 모든 사물은 빛을 반사하고 그 반사한 빛의 형태와 빛깔대로 우리는 사물을 본다. 바늘구멍사진기는 사물을 보는 이런 원리를 가장 단순하게 몸에 지니고 있다. 찍고 싶은 세상을 향해 사진기를 놓고 구멍을 열면 사물이 반사한 빛은 그 작은 구멍 속으로 들어오고 이어 그 빛이 필름에 찍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구멍으로 빨아들인 세상/빛이 이미지가 되었다.  

핀홀카메라의 특성상 긴 노출 때문에 흐릿하게 붙잡힌 풍경은 사뭇 몽환적으로 다가온다. 명료한 형태와 선명한 색상이 사진의 힘이라면 이 이미지는 좀 답답한 편이다. 더디게 빛을 받은 핀홀 카메라는 움직이는 세계를 아주 느리게 인용하면서 사물과 대상을 오래 들여다 본 시선의 여정을 드러낸다. 명징성과 선명함을 대신해 흐릿하고 모호하며 꿈처럼 다가오는 이미지는 비현실적인 동시에 환각적이며 그런 만큼 애매한 경계에 위치해있다.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이 대상은 실제인지 모조인지, 사실인지 가짜인지, 진실인지 키치 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대상들은 그렇게 가짜처럼 자리하고 있으면서 우리들 눈을 매번 속이는지 모르겠다. 박홍순은 핀홀 카메라의 그 작은 구멍을 통해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모조로 치장된 현실풍경을 침묵과 느림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그 풍경 아래 잠복된 덧없는 욕망의 자취를 천천히 건져 올리고 있다.

 

 

 

 

 

 렌즈가 없는 기계적인 특성으로 인해 핀홀 카메라는 뷰파인더 없이 대상과 관계해야 하며  순간의 어떤 정황을 포착하기 어렵다. 대신 핀홀 카메라는 피사체와의 은밀한 교감을 부추기는 매체인 편이다. 직접적인 현실의 재현과는 거리가 있는 핀홀카메라에 잡힌 이미지는 ‘사진적 사실주의’와는 또 다른 사진이미지를 통해 그 대상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오히려 드러내주는 무의식적인 매개로 작동한다.

작가가 찍은 모텔의 전경은 대부분 유사한 패턴을 획일적으로 두르고 있다. 유럽의 성채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여러 시간대의 장식들이 혼재된 국적불명의 정신분열증적 인테리어로 마감되어 있으며 더없이 키치적으로 치장되어 있다. 이 우스꽝스러운 건물들은 한결 같이 낭만적인 이름을 커다란 명패처럼 달고 있다. 모텔들의 이름은 나중에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먼 이국의 구체적인 지명을 차용한다. 나폴리, 모나코, 몰디브, 하와이 혹은 파라다이스 등이 그것이다.

근자에 우리들 공간 곳곳에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이고 화려하면서도 어딘지 이질감이 감도는 건축물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들 공간은 실용성과 현대성이 아닌 복고와 환상, 낭만과 이국취향에 의해 덧씌워지고 있다. ‘서양적인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 아래 인테리어와 외장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사회 계급적으로 지향되는 것은 중세서구의 상류층 계급, 귀족과 왕족의 표식이다. 지난 서양의 건축물을 지금 이곳의 풍경에 가설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 결과 건물의 외벽과 내부의 천정 및 바닥, 기둥 등에 서양의 성채를 상상하게 만드는 모호하고 아리송한 장식적 요소들을 대충 갖다 붙이게 되며 국적 불명의 외양을 갖춘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형태가 일종의 규칙이 되었고 이를 모방한 건물들이 전국 곳곳에 우후죽순 세워지고 있다. 수많은 외래 문화적 요소들이 다시 한국 현대의 도시 맥락 속에서 뒤섞이고 쪼개 붙여져 새로운 의례공간과 형식을 낳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 같은 문화적 원전과 규칙은 보이지 않는 강제로 작용하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그것이 어떤 원전에 의해 자신들이 움직이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들의 공간은 국적 불명의 문화적 혼합물을 동원해 가상현실을 제조하는 공간, 마법의 성, 기이한 모텔들로 가득 차있고 그것은 어설프고도 모호한 환상을 담고 낭만과 꿈을 생산하고 있다. 국적 없는 인공과 소비의 모조품으로 이루어진 다소 슬픈 유토피아 풍경이다

 

 

 

 

모텔은 이성을 유혹하는 장소, 성적 욕망을 충족하거나 욕망의 대상화를 드러내는 장소다. 작가는 그 풍경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본다. 핀홀카메라는 몽환적으로 그 대상을 드러낸다. 어두운 밤, 어스름할 때 술에 취해 흐려진 시선에 들어온 모텔의 외관, 혹은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눈을 닮았다. 그런가하면 그곳은 아주 잠시나마 그들만의 욕망과 사랑, 일탈과 모험심을 환상처럼 품어주고 현실의 책무와 의례에서 잠시 유예시켜준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모텔은 이내 다른 이의 천국이 되고 한 쌍의 남녀는 다시 현실의 풍경 속에 점경이 되어 사라진다.  

사실 그 같은 속성을 지닌 모텔의 외관을 찍기에는 핀홀 카메라가 ‘딱’이다. 핀홀 카메라는 몇 겹의 환상을 더해준다. 유럽 궁전풍의 외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야자수, 삼각 깃발의 흔들림 들이 비오는 날 창가에서 바라보이는 밖의 풍경처럼 흐느적거린다. 아울러 전지크기의 인화상태에 고급한 금박액자가 개입되면서 그 환상성은 배가된다. 이 사진에는 결국 작가의 기억이나 욕망이 투영되고 있다.  

   

 

 

 

 현대의 공간은 소비의 목적을 위해 실재가 아닌 여러 코드가 작용하여 모방 혹은 유사이미지를 만들고 채워간다. 욕망을 자극시키는 유혹의 시각적 이미지와 물질계, 그곳을 복제시킨 인공의 이미지는 사물과 현실 그리고 실재를 오히려 유사화 시키고 모방화 시켜 환상과 환영을 유발하며 따라서 현실의 공간은 인공의 이미지로 재현되고 대체된다. 사실 공간은 비어있는 장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로 채워지는 장소다. 또한 시간과 문화가 서식한다. 현재 우리의 공간은 여러 모습의 다차원적인 문화와 욕망, 서구문화의 유입과 소비의 욕망으로 채워지고 만들어져 가고 있다. 그렇게 공간은 새롭게 증식되고 여러 변종을 산포하며 새로운 지형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그 공간에 주목하는 작업들을 자주 접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공간, 이미지에 대한 일차적 관심일 것이며 자기 삶을 규정하고 추동하며 굴절시키는 여러 장치들에 대한 자연스런 시선일 것이다. 도시 공간, 나아가 삶의 공간이 인간과 인공물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문화적 실천, 의식, 행동들이 수직적, 수평적으로 구조화된 텍스트로 간주되는 것이다. 기호학적으로 ‘도시 공간 텍스트읽기’라는 일련의 해석 방식을 취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공간과 그 공간의 건물들은 작가들에게 거대한 텍스트가 되었고 그 텍스트의 행간을 읽으려는 부지런한 눈들에 의해 분해되고 수집되고 배열되는 것이다. 박홍순이 핀홀카메라에 담은 모텔과 조악한 조형물 역시 현대 한국의 공간에 대한 탐사의 성격이 짙다는 생각이다.    

 

 

 
 

 

 
 

vol.20060719-박홍순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