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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사진展
- Picture Postcard -
갤러리 쌈지 제2전시실
2006. 7. 19(수) ▶ 2006. 8. 7(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38번지 | 02-736-0088
미니어처 세상과 시뮬라크르의 향연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이 영화는 주인공이 기차가 오는 철교 위에서 자살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영화의 진행은 주인공이 과거 살아 온 삶의 자취를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물음은 점진적으로 악인으로 그려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과연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하는 인물인가 아니면 시대의 희생양인가 다시 말해 그토록 순수했던 그를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사실상 우리 모두의 공통된 삶의 딜레마이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집단 현상이다. 과연 세상에 특별히 선한 사람과 특별히 악한 사람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과연 선과 악의 절대적인 경계가 있을까? 아마도 인생의 긴 세파를 헤치고 살아 온 50대 가장이 본 인간의 정의는 동화책의 선인도 악인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범인(凡人)일 것이다. 결국 삶의 조건에서 인간 존재의 진실은 더 이상 선악으로 구별되는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고정관념 역시 원래 존재의 카오스로부터 만들어 진 가변적인 것들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가짜로부터 진실을 구별하는 절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 원래 플라톤 동굴에 갇혀 있는 죄인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현실의 삶을 통해 포착된 경험적인 사실들 즉 동굴 벽면에 비친 어둠의 그림자들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의 원본만을 상기하도록 강요당해 왔다. 그것은 또한 끝없는 가면 무도극의 연속이었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원본과 복사본의 관계에서 가짜로부터 진짜를 구별하는 진위 문제가 아니라, 시뮬라크르(simulacre)로부터 드러난 복사본 다시 말해 현실 효과(effet du reel)로서 진실로 위장되고 변조된 가짜를 이해하는 존재의 문제이다.
오늘날 디지털 정보사회에서 예컨대 매일 아침 뉴스와 신문 그리고 거대한 인터넷 정보 바다의 엄청난 정보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심도 허락하지 않는 진실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과학적 사고에 대한 우리들의 맹신이 만든 착각이다. 우리는 예컨대 텔레비전 뉴스, 신문 기사, 광고 문구, 인터넷 글 등 언제나 활자로 만들어지고 전파되는 모든 것을 진실로 믿도록 강요되어 왔다. 얼마나 많은 조작과 왜곡이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켜 놓았을까? 검증된 사실, 실증적 보고, 과학적 방법, 논리적 사고, 획일화되고 보편화 된 사실 등을 담보하는 모든 대중매체의 내용물들은 사실상 가면무도회에 나온 춤추는 가면들이다. 우리가 보는 것 그리고 진실로 믿는 것 그것은 바로 현실의 가면을 쓰고 춤추는 시뮬라크르들의 향연인 셈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현실은 존재의 시뮬라크르(크라틸로스 cratylos)와 진실로 위장된 시뮬라크르(크라틸 cratyle)의 이중으로 된 현실이다. 다시 말해 가짜와 진짜가 뒤범벅이 된 카오스일 뿐이다. 거기서 대중매체는 진실이든 거짓이든 진짜든 가짜든 여하간 일방적인 전달 역할만 수행할 뿐, 결코 가짜로부터 진짜를 구별하지 않는다. 현실은 거대한 디오니소스의 무질서와 그것으로부터 드러나는 아폴론적 질서가 혼재되어 있을 뿐이다. 과연 어디에 진실이 있는가?
여기 보여 진 작가 김동욱의 미니어처 사진들은 대상에 대한 단순한 시각적 재현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 근처에서 이해된다. 왜냐하면 사진 이미지는 우선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의 출현 속에서 진짜로 둔갑된 시뮬라크르를 암시하는 탁월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재현은 작가에 의해 오랫동안 기획되고 계산된 의도적인 장면들로 사진의 연극성과 지시성을 배경으로 특별히 은유적인 방식을 동반하고 있다.
우선 주제로서 미니어처 세상은 가짜가 진짜로 둔갑된 현실의 이중성을 폭로하는 가장 예시적인 것이 되는데, 거기서 대상은 비록 단순한 실체의 모조를 보여주고 있지만 오히려 세상의 모든 진짜 아닌 진짜와 동시에 가짜 아닌 가짜를 비유적으로 암시한다. 원래 미니어처는 원본을 모방한 복사본으로 특히 영화 촬영을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모형을 말한다. 이와 같이 미니어처 제작의 근본적인 의도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현실의 가짜와 진짜의 구별을 폐지하려는데 있다. 특히 일단 미니어처가 사진 이미지로 재현될 경우 미니어처 세상과 현실의 차이는 사실상 사라진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두 현실의 경계를 전복시키려는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가장 전형적인 카메라로서 그리고 현실의 진실을 가장 확실히 담보하는 대형 카메라로 한국의 부천과 중국의 심천 그리고 일본 시요와에 있는 미니어처 테마 파크를 촬영한다. 어딜 가든 공통된 형태와 공통된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니어처는 이미 상품화 된 판박이 관광 상품이 되었고, 거기서 사람들은 가상을 실제로 그리고 착각을 현실로 간주하여 미니어처 기념물과 함께 촬영한다.
또한 가상세계를 현실로 위장하기 위해 작가는 관광 엽서 사진과 똑 같은 컬러화면 구성을 하고, 미니어처의 축척과 비율을 왜곡하여 응시자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실물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특히 축척과 비율에 의한 시각적 착시는 모기만한 코끼리와 코끼리만한 모기를 만들어 내는 조물주(조화의 신)의 일시적 혼동을 암시한다. 그것은 또한 플라톤 동굴 벽면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임과 동시에 특히 오늘날 무한 정보사회의 모든 질서와 조화의 벽을 이탈하여 존재하는 가치 기준의 상실과 혼동을 말한다.
더구나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하는 흐린 이미지는 이러한 착시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여기서 흐린 효과는 대상에 대한 심미적이고 조형적인 표현도 아니며, 삶과 생명을 상징하는 움직임의 증거도 아니며, 또한 사회적 정치적 사건에 대한 기억적 망각이나 환영은 더욱 더 아니다. 그것은 오르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착각 즉 정보의 시뮬라크르를 드러내기 위한 사진적 은유로 간주된다. 결국 우리로 하여금 가상현실을 현실로 착각하게 하는 작가의 사진적 행위는 궁극적으로 오늘날 가상 사이버 현실이 개인이 직접 체험한 경험보다 오히려 더 진짜가 되는 오늘날 디지털 정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암시한다. 이경률 | 사진 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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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060719-김동욱 사진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