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순 개인展

 

- 동네 -

 

마흔둘  raku 2006

 

 

모란 갤러리

 

2006. 6. 21(수) ▶ 2006. 6. 27(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7-28 백상빌딩 지하 1층 | 전화 02-737-0057

 

 

꽃을 든 남자  테라코타  2006

 

 

테라코타 재벌 과정에서 연기를 먹이는 라꾸(raku) 작업으로 선보이는 지명순의 세 번째 개인전. 유년의 기억 등 이전까지 가슴 속 풍경들을 길어올리며 과거를 향해있던 시선이 2006년 ‘동네’에 와선 바로 지금 이곳의 사람살이 모양을 들여다보는 현재의 시각으로 확장됐다. ‘마흔둘’, ‘친구’, ‘벤치 1,2,3’ 등 동네 어느 길목에서건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뜻 일상의 단순한 표면의 기록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서 웃음과 버무려진 외로움이나 상처 따위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것이 또 다른 의미. 그만그만한 인생살이 동안 누구나 겪게 되는 그닥 치열하지 않은 고독, 용서할 만한 무관심, 외로움까지 편해져 버린 늙어감에 대한 단상 등 착한 웃음과 나른한 한숨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살이 풍경이 손 맛 살아있는 흙 작업으로 펼쳐진다.

수더분하고 따스하다. 지명순이 흙으로 빚어낸 사람과 풍경은 언제나처럼 그렇다. ‘동네’라 제목 붙인 이번 이야기도 여전하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니, 좀 외롭다. 그렇다고 치열한 고독 같은 건 아니고 삶이 가져다주는 당연한 외로움들이다. 그런 이유에선지 전작들에선 가슴 한 켠에 묻어둔 유년의 기억 혹은 흑백 사진 속 풍경의 마른 꽃잎 향기가 나더니, ‘동네’에선 달작지근하면서도 쌉싸름한 삶의 냄새가 묻어난다. 오랜 친구 지명순의 작품이 어찌 변했는가 싶었는데, 이렇게 우리네 삶 쪽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동네  테라코타  2006

 

 

정지된 과거의 풍경을 지금 이곳의 시간으로 데려오면서 지명순은 삶의 속도를 담아내기로 작정한 듯 하다. 아내가 돌아누운 ‘침대’ 풍경에선 사랑이 식어가고, 중년은 생각보다 빨리 들이닥친다(‘중년’).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늙어 가는데(‘벤치’) 어느 곳에선가 또 다른 사랑은 시작되고(‘꽃을 든 남자’), 꽃잎 흩어져 내리며 ‘봄날’은 간다. 마음보다 늘 앞서 가면서, 마음과는 늘 다른 방향으로 어긋나며 흘러가게 마련인 삶을 이런저런 외로움의 형태로 빚어내며 그 뒤를 총총 따라간다.  

그런데 외로운 그 모습들이 그닥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이 희한하다. 지명순의 ‘동네’ 이야기는 바로 여기가 발화점이다. 외로운 풍경들이 웃음을 불러내면서 세상은 그래도 견딜만하다고 여기게 해준다. ‘마흔둘’은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듬직한 똥배를 내밀고 서있는 중년 여성이다. 핸드백 끈을 바투 거머쥔 모습에선 지나간 꽃다운 시절에 대한 미련이나 서글픔 보다는, 도리어 그 따위 구속에서 벗어난 경쾌함이 느껴진다. 코고는 남편, 벽 쪽으로 돌아누운 아내의 침대 풍경은 세상의 모든 아내들을 잠시나마 한마음으로 웃겨줄 것이다. 그리고 벤치 위에서 연탄재 색깔로 사위어 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상은 고독하지만 그것마저 익숙해져서 친근하기까지 하다.    

     

 

벤치  테라코타  2006

 

 

세상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얘기 들려주듯 풀어놓는 지명순의 이야기 방식은 완고하거나 치열하지 않다. 상식을 세련되게 비껴가는 기발함이나 몇 번쯤 비튼 유머 같은 것에도 별 관심 없어 보인다. 그저 착한 시선으로 둘러보며, 알고 보면 고만고만한 삶의 외로움들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거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삶이라는 텃밭에서 외로움이 웃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으로 외로움과 웃음 사이에 고리를 걸쳐 놓았다. 그렇게 해서 그가 흙으로 빚어낸 동네 어귀의 집들은 전봇대 밑에서 저희들끼리 낮은 어깨를 맞대고 밤을 보내고, 동네 골목 어디 곳쯤에선가 사랑이 언젠가는 습관으로 변할 것임을 잘 알면서도 연인들은 수줍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들녘 나무도 바람 불면 들풀을 친구삼아 사이좋게 드러눕는다. 착한 웃음과 봄날 오후의 나른한 한숨을 불러일으키는 우리네 삶의 한 풍경이다.  

흙을 대하는 자세가 지극히 성실한 지명순은 흙을 갖고 노는 여유를 꿈꾼다. 흙과 마주앉아 한 번 묻고 한 번 답하는 과정을 지나, 몇 호흡씩 훌쩍 뛰어 넘으며 자유로워지고 싶다 한다. 고집스럽되 결코 옹색하지 않은 열린 감각,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되 동시에 낯선 감성, 그리고 성실하되 능청스럽고 뻔뻔한 여유를 다음 전시에서 만나기를 벌써부터 기다려 보기로 한다.

독립 큐레이터 | 김현진

 

 

침대  raku 2006  

 

 

 
 

 

 
 

vol.20060521-지명순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