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나카시마 & 세르주 무이展

 

 

 

국제 갤러리

 

2006. 4. 18(화) ▶ 2006. 5. 18(목)

매주월요일 휴관 | 오프닝: 4. 18 화요일, 5 pm – 7 pm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59-1 (우)110-200 |02-735-8449

 

 

■ 전시취지

국제갤러리는 나무에 제2의 생명을 불어넣어 나뭇결과 선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린 작가 조지 나카시마의 가구와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잘 표현한 세르주 무이의 조명을 함께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현대 미술품과 뛰어난 하모니를 이루는 것으로 정평이 난 나카시마의 가구와 무이의 조명, 관객들은 이 두 거장의 에너지가 서로 만나 신선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카시마의 오리지널 작품 50여 점이 선보이는데, 그의 컬렉션이 이처럼 대량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매우 드문 기회이다.

 

■ 작가 소개

조지 나카시마 (George Nakashima, 1905 – 1990)

원목을 사용하여 나무의 결과 선으로 만든 자연적인 디자인의 효과를 최대화 하는 것으로 유명한 조지 나카시마는 원래 건축학을 전공했다.  1905년 미국 워싱턴 주의 스포케인 (Spokane)에서 일본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작가 나카시마는 1929년 워싱턴 대학교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건축학 학위를 얻은 후 파리의 (Ecole Americaine des Beaux- Arts)에서 수학한 후 1930년 M.I.T. 에서 건축석사학위를 받았다. 1931년에 건축 디자이너로 롱 아일랜드 주립 공원과 뉴욕 주정부에서 일한 후 1933년 파리로 건너가 약 1년 여 간 시간을 보낸 후 1934년 일본 그리고 인도로 옮기면서 안토닌 레이몬드 (Antonin Raymond)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다.  이 곳에서 지내면서 동양의 전통 나무공예를 그 곳 마스터들에게서 배웠으며 특히 인도의 폰디체리 (Pondicherry)에서 스리 오로빈도 아스람 (Sri Aurobindo Ashram)의 리더인 스리 오로빈도에게 요가 가르침을 받는데 이는 후일 그의 작품세계의 기본 정신이 된다.  

 

파리, 일본, 인도를 두루 다닌 후 1940년 초에 미국으로 돌아온 나카시마는 잠시 시애틀 (Seattle)에 있었지만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가족들과 함께 집단 수용소로 전전하게 된다.  수용소에서의 어려운 생활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일본 전통 목공을 배웠던 겐타로 히코가와 (Gentaro Hikogawa)를 만남으로 인해 작가에게는 전환의 기점이 된다.  나카시마는 전통 목공예와 전통 연장의 사용법을 전수 받게 되며 이는 후의 그의 작업에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된다.  이후 나카시마 가족은 안토닌 레이몬드의 도움으로 수용소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며 1943년에는 펜실베니아 (Pennsylvania) 주의 뉴 호프 (New Hope)에 정착하여 그 곳에 스튜디오를 세운다.  40년대 후반부터 제작된 코노이드(Conoid) 시리즈, 미라(Mira) 시리즈 등 그의 여러 다른 디자인 작품들은 나무의 자연적인 결과 선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도 간결하고 한층 격이 높은 실용성이 겸비된 것들이었다.  여러 종류의 의자, 테이블, 소파 및 전등까지 그의 디자인은 집안의 구석 구석에 안착되는 모든 것들을 포용했다.  건축물과 가구가 함께 어우러지는 실용성을 따지는 디자인에 애착을 가졌던 작가는 사람의 사용으로 인해 묻어나는 손때와 시간의 흐름에 의해 자연스레 생기는 흔적을 소중히 생각했다.  또한 그는 동양적인 절제된 선 스타일의 미감이 가미된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50여 년 동안 선보였다.

 

가구 및 전반적인 생활용품의 현대화가 한창이던 1940년대 나카시마는 당시 한스 놀 (Hans Knoll)과 그의 아내 플로랜스 슈스트 놀 (Florence Schust Knoll)이 운영한 대표적인 가구 회사 <놀 (Knoll International)>과 협력하였다. 장인정신과 테크놀러지가 결합된 이러한 협력은 보다 많은 일반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좋은 디자인까지 겸비된 그의 가구를 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조지 나카시마의 가구가 21세기인 현재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은 시간을 초월한 그의 디자인적 재능, 나무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자연미, 그리고 그 실용성에 있다. 나카시마의 주요 커미션 작품으로는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 (Nelson A. Rockefeller)의 자택가구, 콜럼비아 대학교 (Columbia University) 인테리어 등이 있다.

 

세르주 무이 (Serge Mouille, 1922-1988)

조명기구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린 세르주 무이의 경력은 은세공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파리의 응용미술학교 (Ecole des Arts Appliqués)에서 은세공 마스터 자격증을 딴 후 은세공인 겸 조각가 가브리엘 라크로아 (Gabriel LaCroix) 밑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1945년, 그의 나이 23세에 응용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어 본격적인 작업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가 디자인한 것은 주로 계단 난간의 손잡이나 샹들리에, 벽걸이 촛대 등이었다. 그가 조명기구를 본격적으로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은 1953년으로 다양한 형태의 조명기구들을 만듦으로써 큰 명성을 안게 된다.

 

무이가 1950년대에 디자인한 조명기구들은 벽에 부착하거나 바닥에 세우는 램프들로,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커다란 곤충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형태를 띠었다. 그는 기계 생산에 의존하지 않고 램프 하나하나를 직접 제작했으며, 조각적이면서도 공간 속에서 운동감을 느끼게 하는 형태를 추구했다. 그의 램프들은 특히 전구를 덮는 알루미늄 머리 부분에 꼭지모양의 돌출이 난 것이 특징적인데, 이는 전구의 반사광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소박한 검정색의 사용과 산뜻한 형태, 그리고 구조적 효율성이 그가 만든 램프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무이의 램프들은 1956년부터 샤를로트 페리앙 (Charlotte Perriand), 이사무 노구치 (Isamu Noguchi), 장 프루베 (Jean Prouvé)의 작품들과 함께 파리의 스테프 시몽 갤러리 (Steph Simon Gallery)에 전시되었다.  스테프 시몽 갤러리는 당대 파리의 많은 전위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곳으로, 그 중심에는 페리앙과 프루베가 있었다. 무이는 이곳에서 전시하는 동안 여러 기관에 조명기구를 공급하였는데, 안토니 대학 및 스트라스부르와 마르세유의 학교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50년대 말엽에는 네온관의 발명에 영감을 얻어 백열광과 형광을 결합한 전기 스탠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무이의 조명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단일화된 디자인 제품이라기 보다는 독특한 형태의 미를 갖춘 조각 조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vol.20060418-조지 나카시마 & 세르주 무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