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展

 

Ultra-Hyojin (raise my hands and foots), 2006 Acryl board, LED size 1500*850*120 / 경효진

 

 

대안공간 눈

 

2006. 3. 24(금) ▶ 2006. 4. 2(일)

442-180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232-3  3/2 | 031-244-4519

작가와의 만남 : 2006. 3. 25(토)  오후 5:00

 

 

rty six / 권택중

 

 

■ 전시목적

인간은 자아를 가지고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엄연히 인간이 창조하고 향유하는 예술이 자기 자신와 어떤 형태로든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물론 이것이 ‘예술은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자기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를 담아내야 한다’는 논리로 비약될 수는 없다. 다만 정체성이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인간의 창조물인 예술은 창작자와 감상자가 자기 자신과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물이 직간접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특히 나와의 연관성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스스로에 게 말을 건네는’ 예술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 또한 그 정도, 행태, 분야 등에 따라 무수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논의의 초점을 보다 명확히 하면, 이 전시에서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예술’, 그를 통해 ‘획일화된 사회의 변화를 유도해 내고자 하는 목적성을 담지하는 예술’에 대한 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ULTRA 기 현 / 가변설치 / 해부된 쥐, lcd패널, 유리, 쥐의 뼈, 나무 등등 / 류 기현

 

 

■ 전시주제  - The ULTRA -

인간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최고의 가치를 설정해놓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지고(至高)의 가치나 목표를 잃어 이미 세계와 이상의 일치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익명성이 보장되고, 진취적인 활동이 전혀 필요없는 노예성과 수동성이 보장되고, 큰 능력을 갖지 않고 왜소해도 되는, 그런 대중속에 섞여서 살게 된다.

광범위한 범위와 급격한 속도로 사회가 변동하고 있다. 좀더 비약적으로 말한다면, 하룻밤 사이에 사회가 변동해 버린다. 이렇게 급속한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들은 그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점점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자제하고 자신의 환경을 고려하라는 식의 도덕적 이성적 호소만으로는 극히 불충분하다. 그를 위해서는 근대와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이해와 새로운 인간관이 요구되는 것이다.

 

 

ultra-mask / 가변크기 / 남윤표

 

 

바로 이 전시는 우리가 이런 현상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며 그에 대한 대안을 ‘Ultra - thing'으로 선정하였다. 주제인 ‘울트라(ULTRA)’는 '매우', '엄청'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단어로서, 영어의 Ultra(극단적인, 과격한)의 접두사형인 Ultra-(극단적으로, 극도로, 초~~)를 어떠한 단어 앞에 붙이면 정도가 더 심함을 나타내면서 단어의 뜻을 더 강조한다. 우리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로서, Ultra-thing 이라는 용어에는 ‘Ultra man’이라는 일본 만화에서 많이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울트라 수퍼타이, 울트라 캡숑~~, 울트라 케어, 울트라 하기스, 등 상품명이나, 과학용어에서 유행어나 저속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가 말하고자 하는 Ultra-thing은 가장 보편적이고 명확한 산물인 동시에 생활방식에 의해 창조된 넓은 계층에 뿌리를 두고 확산된 산물이다. 어쩌면 트렌드를 쫓고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 세대는 현대 일상의 단조로움과 권태라는 끈에 묶여 기분전환이나 단순한 즐거움에 대한 작은 욕구조차도 사치가 되버린 것일지도 모리겠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울트라-thing'을 갖길 원한다.

 

 

박 지호 작

 

 

■ 전시내용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울트라’란 단어를 각자의 성(姓)을 제거한 이름앞에 달고 작품을 제작된다. (ex. 울트라 기현) 이러한 새로운 닉네임은 본인의 작품에 제목이 되는 동시에 원래 이름이 가졌던 주체적인 성격의 의미에 절대적 변신을 꾀하기도하며, 또한 본질의 의미를 더욱 증폭시키기도 한다. 마치 자신이 어떠한 사물이 될 수 있는 ‘Ultra-thing'에 대한 관심 안에서, 자신의 모든 정서를 보다 접근이 용이하고 빠르며 예측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락과 여흥으로서의 효과를 지니는 것으로 만들기도 하며, 또한 자신을 울트라화하여, 즉 모든 질서와 규제를 뛰어넘는 순수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작게는 이성보다는 감정과 직관을 앞세우고, 사회보다는 개인을 더 찬양하며, 전통과 관습의 모든 구속을 무시하면서 내 안에서 새로운 기쁨을 찾고, 크게는 나란 인간은 사회의 작은 부속품이 아니라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우주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데에까지 그 목적은 다양하다.

이러한 접근론은 각 작가들의 영역이 고도로 복합적인 정서와 체험영역까지 이르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Ultra- thing’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이 더욱 거대해지면서 진짜 자아 혹은 왜곡된 면모가 들어내게 한다. 이제는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대상 자체가 중요해지게 되며 관객에게는 이론과 트렌드처럼 여겨지는 자신을 내면으로 불러드리려는 노력을 하게 하며, 이제는 나의 깊이에 대해서 고민하는 관객이 되게 하는 것이다

 

 

외출하는 아내 / 이 경숙

 

 

 

 
 

 

 
 

vol.20060324-울트라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