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운 展

 

팡센의 질주

A gallop in Fangxian

 

 

 

Gallery Now

 

2025. 1. 4(토) ▶ 2025. 1. 25(토)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152길 16 (신사동) | T.02-725-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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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계마을의 개들_80x120cm_Acrlyic on canvas_2024

 

 

팡센에서 보낸 3개월

나는 2024년 7월부터 9월까지 중국 내륙의 후베이성 스옌시 팡센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이번 작업들은 3개월 동안 대부분 팡센에서 제작한 것들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낯 선 곳에 서면 나는 흥분이 된다. 다섯 차례의 경험이 그랬고 점점 체적화 되어 가는 느낌이다. 의도한 고립에서 생각하지 못한, 내가 못 본, 못 느낀 것들이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작업실을 떠나 다른 장소에 거처를 만들어 작업한다는 것은 산만하고 집중력을 잃게 할 것이라는 선입감이 있었다. 기우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들은, 안정되고 익숙한 기존작업실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새로운 긴장감을 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더욱 그렇다. 특히 오랫동안 한 우물 속에서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고 작업의 행로가 강으로 가는지 산으로 가는지 모르고 있었다면 레지던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고 새로운 영감들을 만나게 한다.

내가 머문 곳은 팡센의 중심가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져 있었다. 이곳은 구도시를 새로 조성한 예술특구이다. 대부분 베이징에서 이주해온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전문인들과 특구를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다. 평온하고 고요한 곳이다. 바리게이터로 구획된 작업실을 나서면 내가 살았던 유년기 시절 겪고 보았던 풍경과 사람들이 살고 있다. 수 십 년 전의 우리 모습과 현재의 사람들 그리고 첨단적인 것들이 섞여 있다. 이른 아침에는 보호자의 손을 잡은 유치원생부터 등교하는 중고교생이 골목을 메운다. 이들과 야채, 고기, 과일 등을 파는 사람들과 한데 섞여 북새통을 이룬다. 도로변의 작은 식당에서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거나 음식을 포장해가려는 이들이 줄지어 있다. 나는 그들 틈에서 아침 꺼리를 위해 장을 보거나 식당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과 같이 대열에 서서 아침을 해결하기도 했다.

한낮의 거리는 고요하다. 무더위로 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더위가 한 풀 꺾인 오후. 작은 골목 안 그늘에 어린 소년들이 어울려 있다. 어두운 골목은 건물 사이를 비집고 비치고 햇빛과 대비 되어 보였다. 이렇다 할 놀이 기구 없이 바닥에 뭔가를 긁적이거나 손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장면은 까마득히 잊고 있던 아주 오래 전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 겹쳐 보였다. <팡센의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동안 골목 안을 비추던 햇살 속에 마치 그들의 밝은 미래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팡센에서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작업실 주변을 산책하거나 한두 시간이 소요되는 외곽의 작은 마을을 걸었다. 목재로 된 대문에는 칼을 든 채 말을 타고 달리는 두 명의 장수가 그려진 인쇄물이 붙어 있었고 그 색상이 붉어 쉽게 눈에 띄었다. 그 두 명의 장수는 중국 당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진경과 위지공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여러 집 대문을 지키며 평안과 무병을 준다고 했다. 이번 전시장 벽에 걸릴 <질주>라는 제목의 두 작업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두 장수를 팡센의 희망찬 새로운 미래의 젊은이들로 바꿔놓었다.

 

 

네남자의 여름_120x200cm_Acrlyic on canvas_2024

 

 

이른 아침. 군점고진이라는 마을에 갔다. 마을 초입에는 제법 큰 시내가 흐르고 냇가를 가로 지르는 아치형의 다리 옆에 남자들이 앉아있다. 편한 복장으로 보아 더위를 피해 이른 시간 마실 길에서 만났을 것이다. 비슷한 나이의 오래된 동네 친구처럼 보인다. 동네 사람들의 근황, 개인적인 고민, 가족들의 건강 등을 대화로 삼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남자의 여름>은 그렇게 지나 갈 것이다. 냇가에서 여인들이 대화를 하며 빨래를 한다. 군이 오랜 기간 점령해 있었다는 유래를 가진 이 동네는 작은 골목길로 불규칙적으로 이어져 있고, 오래된 건물들이 흥미롭다. 반갑게도 한글로 된 입간판도 보이고 옛 모습을 유지 한 채 다듬어져 관광지로 조성될 것 같다. 문밖에는 더위를 식히는 노인들이 앉아있다. 몇 집 지나니 낮고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엄마가 딸의 머리를 빗겨준다. 잠에서 덜 깬 <머리 빗는 모녀>가 낯선 이방인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군점현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계산 하는 여주인>과 잠옷을 입은 채 아침 산책을 하는 <할머니와 개>를 보았다.

당계마을은 작업실에서 걸어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처음 그곳을 갔을 때는 마을 위의 저수지에서 거꾸로 마을을 내려다보는 묘미가 있었다. 논과 밭이 한 여름의 녹음으로 덮여 있었고 군데군데 집들이 평화롭게 보였다. 두번째로 이 마을을 찾았을 땐 깜깜한 밤이었다. 하늘에 별만 보이고 여름 벌레 소리와 습기 먹은 풀 냄새만 맡았다. 산인지 물인지 모른 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다녀왔다. 다소 밋밋했던 마을을 다시 찾은 것은 유독 많았던 주인 없는 개들 때문이었다. 무질서한 듯 엉켜 있던 건물들과 휑한 벌판 사이에 <당계마을의 개들>이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면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밖에 함께 모여 운동을 한다. 아니 춤을 춘다. 자리가 정해져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요란한 음악소리에 맞춰 찌는 듯한 무더위를 정말 날려 버릴 것처럼 격정적으로 몸을 흔든다. 빗물 같은 땀을 흘리며. 처음에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웠다. <한여름 밤의 댄스>는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청봉대열곡. 글자 그대로 높고 푸른 산봉우리가 두부 자르듯 나누어진 계곡이다. 외국인 출입이 제한되었으나 용케 입장해서 반나절 동안 계곡을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었다. <청봉대열곡의 책 읽는 남자>를 떠올린 것은 하산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시원하게 흐르던 계곡 옆에 넓고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옆의 안내판에 적힌, 독해가 어려운 한자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 바위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하면 높은 관직에 오르고 큰 인물이 된다는 뜻이라 해서 모두들 한번 씩 바위에 올라 본다는 것이다. 나는 큰 나무 숲 아래가 시원해 보이긴 했으나 계곡물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이번 레지던시를 떠나기 전 마음먹은 것이 있다. 오랜 기간 나의 그림 그리기의 의도가, 습관적으로 대입된 틀 속에서 생산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오래된 고민을 해결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이 결의를 팡센 에서, 감금된 상태에서 시도를 해 보겠 노라고...

 

2024년 12월 최석운

 

 

군점현의 모녀_80x60cm_Acrlyic on canvas_2024

 

 

한낮의 샤워_120x100cm_Acrlyic on canvas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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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50104-최석운 展